라면으로 친숙한 ‘삼양식품’과 달리, 오늘 소개할 삼양그룹은 1924년 해안 간척지에서 소금을 굽던 작은 염전으로 출발해, 지난 1세기 동안 설탕·화학섬유·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약 바이오까지 영역을 넓혀 한국 산업화의 이면을 지탱해 온 ‘보이지 않는 100년 기업’입니다. 해리염전, 울산 정제당, 트리론 폴리에스터, 이온교환수지, 생분해성 봉합사—우리 밥상‧옷장‧공장‧수술실에 스며든 삼양 기술을 연대기별로 탐험하며, 소재 혁신이 어떻게 한국 경제를 견인했는지를 2배 길이로 상세히 풀어보겠습니다.
1. 해리염전과 삼양설탕: 광복 직후 식탁을 바꾼 초석
1924년 수당 김연수는 ‘수사(秀沙)’를 세워 장성·줄포·고창 해안의 간척농장을 경영했습니다. 1931년 사명을 ‘삼양사’로 바꾸고 여의도 6배, 500만 평 간척을 완수해 ‘민족자본 대농장’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광복 직후, 북한 염전 집중 개발로 남한 소금 자급률이 20% 미만으로 떨어지자, 김연수는 미개간지에 해리염전을 조성(1946~1949)했습니다. 연간 5만 석의 천일염이 생산되며 김치·젓갈·장류 수급이 안정됐고, 6·25 와중에도 군경 보호로 염전을 지켜내 1951년 6만 5천 가마를 생산했습니다.
전쟁 직후 삼양은 “먹을거리가 산업화의 기초”라 판단, 설탕·알코올·한천 중 ‘설탕’을 택해 1956년 울산 정제당 공장을 가동했습니다. 당시는 전량 수입이던 설탕 가격이 쌀 1가마보다 비싸 ‘경성 상류층 기호품’이었지만, 삼양은 원당 직수입→내국정제 구조를 도입해 소비가를 절반으로 내렸습니다. 국산 설탕 덕분에 캔디·비스킷·탄산음료·약용시럽 공장이 잇달아 생겼고, ‘단맛=사치’에서 ‘단맛=에너지’로 식문화 인식이 전환됐습니다. 1962년 일본 오키나와에 700 t 설탕을 첫 수출해 ‘설탕 역수출국’ 기록도 세웠습니다.
국제 원당 파동(1963·1974)으로 가격이 3배 폭등하자 삼양은 인공감미료 ‘달○나’로 대체 수요를 채우고, 1968년 각설탕 ‘미니슈가’와 소포장 생활설탕을 출시해 “커피·차를 집에서 즐기는 문화”를 확산했습니다. 1980~90년대에는 주력 브랜드를 ‘큐원(Q.One)’으로 재편, 알룰로스·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수용성 식이섬유 등 ‘스페셜티 당류’ 시장을 개척해 현재 40여 개 원료·프리믹스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2. 트리론·스펀본드·PC수지: 의류부터 항공까지, 섬유·플라스틱 국산화 여정
1960년대 정부의 수출드라이브와 인구 급증으로 의류 수요가 폭발하자, 삼양은 “면보다 강하고 값싼 합성섬유가 필요하다”며 폴리에스터 국산화를 선언했습니다. 1966년 日 니혼레이온(현 도레이)과 기술 계약, 1969년 전주공장에 국내 최초 ‘중합~방사’ 일관 설비를 구축합니다. 1970년 스테이플 파이버·필라멘트 생산에 성공해 ‘트리론(TRILON)’ 브랜드를 론칭—‘세 번(Tris)의 이점: 강인성·탄성·노다림’을 뜻했습니다.
오일쇼크(1973)로 면화 가격이 폭등하자 폴리에스터 의류 수출은 오히려 호황을 맞아, 1974년 삼양 화섬 수출액은 전년 대비 36 % 증가, 무역적자 감축에 기여했습니다. 1986년 세계 화학섬유 톱10(9위)에 올랐으나, 1990년대 중반 중국·동남아 저가 공세와 국내 과잉설비로 위기를 맞습니다. 삼양은 1995년 스펀본드 부직포 생산(연 3,000 t)으로 기저귀·위생패드·필터 시장을 선점, 생산량의 80 %를 일본에 수출하며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화섬 사업을 2000년 SK와 합작 ‘휴비스’로 분리한 뒤에도 고분자 기술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으로 진화했습니다. 1991년 국내 첫 폴리카보네이트(PC) 수지를 상업화, 자동차 헤드램프·전기차 배터리팩·건축 글레이징의 ‘투명·난연·경량’ 소재를 국산화했습니다. 1993년 테레프탈산(TPA) 자립공정 확립으로 의류용 PET·음료 PET병 원료까지 풀 라인업을 갖췄고, 현재 PC·ABS·PBT·PPS 합금 200여 종을 만들어 TV 8,500만 대, 자동차 1억 5천만 대에 공급했습니다.
최근에는 해양 폐어망을 재활용한 넬론 컴파운드와 PCR 90 % 재생 PC, 옥수수 유래 생분해성 이소소르비드 수지를 상업화해 ‘순환경제·바이오플라스틱’ 선두 주자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3. 이온교환수지·생분해성 봉합사·DDS: 화학소재에서 바이오헬스까지
삼양의 화학 진출은 1976년 강산성 양이온수지(800 t/년) 양산으로 시작됐습니다. 1985년 순수처리용 음이온수지 S20A를 자체 생산하며 반도체·원자력 초순수 설비의 외국 의존을 해소했고, 1987년 CNP 중합공정 도입을 완료해 “양·음이온수지 풀세트”를 보유한 국내 유일 기업이 됐습니다. 48년간 삼양 수지로 처리한 물은 3,700만 ㎥—서울시민 1년 생활용수 규모입니다.
바이오 헬스케어 진출은 1993년 생분해성 봉합사 개발로 닻을 올렸습니다. 1997년 PGA 원사 ‘트리소브’, 1998년 완제품 ‘서지소브’를 출시해 수입 일색 봉합사 시장의 국산화율을 70 %까지 끌어올렸고, 2000년 미국 독점 품목이던 PDS계 ‘모노소브’로 글로벌 1위 원사 공급사가 되었습니다. 누적 판매 길이는 240만 km(지구 60바퀴)에 달합니다.
항암 원료도 개척했습니다. 1995년 주목나무 난개발을 대체하기 위해 식물세포 배양법으로 파클리탁셀 대량생산 기술을 확보, 친환경·저원가 항암제 시대를 열었습니다. 2011년 지주사 체제 전환 후 삼양바이오팜은 약물전달 플랫폼 ‘SENS’(Smart ENcapsulation System)를 개발, siRNA·mRNA 지향 나노리포좀·PLGA 마이크로스피어 파이프라인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결론: ‘보이지 않는 힘’이 이끄는 다음 100년
전북 해안의 천일염 한 줌에서 출발해, 설탕으로 단맛 문화를 열고, 폴리에스터로 한국 패션을, 폴리카보네이트로 전자·자동차 산업을, 이온교환수지로 반도체 클린룸을, 생분해성 봉합사로 K-메디컬을 세계 무대에 올려놓은 삼양그룹. 2024년 창립 100주년을 맞은 삼양은 탄소중립·디지털전환·오픈이노베이션을 핵심 동력으로 ‘글로벌 스페셜티 소재 솔루션 기업’ 비전을 구체화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일상 속 어디서든 삼양의 보이지 않는 기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 100년, 삼양의 소재 혁신이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산업 지도를 바꾸는 순간을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