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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의 탄생 시리즈1 (레이크사이드, IBM PC 계약, MS-DOS)

by sparkino 2025. 5. 3.

1970년대 중반, 하버드 기숙사에서 밤샘 코딩으로 탄생한 ‘알테어 BASIC’은 퍼스널 컴퓨터가 “소프트웨어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의 과감한 라이선스 전략은 곧 IBM PC, MS-DOS로 이어져 ‘소프트웨어 산업’이라는 새 시장을 열었다. 이 1부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기부터 DOS 독점 체제 구축까지, ‘윈텔 제국’ 서막을 만든 결정적 순간들을 살펴본다.

마이크로소프트 탄생 관련 이미지

1. 금수저 영재가 아닌 ‘컴퓨터 광인’ ― 레이크사이드·트래포데이터

1971년 가을, 시애틀 레이크사이드 스쿨의 창고 같은 컴퓨터실. 13살 빌 게이츠는 DEC PDP-10 단말기에 매달려 있었다. 모뎀 속도로 드르륵거리는 ASR-33 텔레타이프, 구멍 뚫린 페이퍼테이프 냄새, “READY” 프롬프트가 어린 천재의 심장을 뛰게 했다. 그는 ‘컴퓨터에게 명령을 내리면 바로 반응한다’는 사실에 완전히 중독됐다.

랩 실습 시간이 부족하자 친구 폴 앨런·켄트 에번스와 함께 컴퓨터 센터 버그를 잡아주는 조건으로 야간 무제한 사용권을 받아냈고, 8주 만에 성인 프로그래머 수준으로 성장했다.

2년 뒤 세 사람은 트래포데이터(Trafo-Data)라는 교통량 자동 분석 시스템을 만들어 2만 달러를 벌었다. 하이웨이 중계기로부터 8진수 펀치테이프를 읽어들여 8080 프로세서로 처리하고 주정부에 보고서를 뽑아주는 장치였다. 상업적 대박은 아니었지만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솔루션이 돈이 된다”는 경험을 안겼다.

1975년 1월, 잡지 Popular Electronics 표지에 실린 알테어 8800 기사 한 장이 두 천재를 전율시켰다. 폴은 하버드 기숙사로 달려와 “빌, 우리가 얘를 움직일 언어를 만들어야 해!”라며 잡지를 내밀었다. 두 사람은 8주 동안 PDP-10에서 가상 8080 에뮬레이터를 짜고 4 KB짜리 “알테어 BASIC”을 완성했다.

MITS 창업자 에드 로버츠 앞에서 공중파 테스트에 성공하자 계약은 즉시 성사됐다. 엉성한 옥외 행사장에서 대형 스피커로 울려 퍼진 “HELLO WORLD” 출력은 소프트웨어 혁명의 서막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알테어 BASIC은 곧장 BBS와 동호회로 무단 복제됐다. 게이츠는 1976년 2월 “Open Letter to Hobbyists”를 통해

소프트웨어를 훔치는 당신들은 컴퓨팅 미래를 망치고 있다

고 일갈했다. 이 편지는 업계 최초의 ‘라이선스 인식’ 캠페인이 되었고, ‘소프트웨어 = 유료 자산’ 개념을 심었다.

빨간 실리콘 밸브를 잠근 사람은 다름 아닌 게이츠였다. “코드에도 소유권이 있다”—이 믿음은 훗날 MS-DOS 독점, 윈도우 번들 전략의 정신적 뿌리가 된다.

2. 거대 공룡을 설득하다 ― IBM PC 계약과 5만 달러의 승부수

1980년 여름, 메인프레임 왕국 IBM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애플 II·TRS-80·코모도어 PET가 학교와 가정으로 퍼지자 ‘프로젝트 체스’라는 극비 TF가 꾸려졌다. 팀장 잭 새먼스는 OS 공급 후보로 디지털리서치 CP/M을 택했으나 협상은 결렬. 그때 눈에 들어온 곳이 시애틀 교외의 작은 회사, 마이크로소프트였다.

25세 빌 게이츠는 “우리가 OS를 공급하되, 라이선스는 비독점(non-exclusive)으로 하자”고 역제안했다. IBM은 하드웨어 선점이 급해 이를 수락했고, MS는 OS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배수진을 쳤다.

빌과 폴은 시애틀컴퓨터프로덕트의 86-DOS(Q-DOS)를 겨우 5만 달러에 인수, 밤낮으로 IBM PC 하드웨어에 맞게 커널과 I/O 드라이버를 개조했다. 1981년 8월 12일 발표된 IBM PC 5150은 겉으론 “PC-DOS 1.0”이었지만, 계약서에는 “소프트웨어 저작권: 마이크로소프트”라 명시돼 있었다.

그 순간부터 컴팩·델·게이트웨이 등 호환기종 업체들이 MS-DOS 라이선스를 줄 서서 받아 갔고, DOS는 1983년 백만·1986년 천만 카피를 돌파하며 PC 표준 API가 되었다.

IBM이 OS 독점권을 놓친 이유? 내부 회고에 따르면 “OS는 부품, 하드웨어가 돈”이라는 과거 관성이었다. 하지만 빌은 달랐다. “미래 가치는 코드가 쥔다. 하드웨어는 교체돼도 인터페이스는 남는다.” DOS를 ‘글루’ 삼아 응용 생태계를 묶어 두며 차세대 GUI 셸 ‘인터페이스 매니저’—훗날 Windows—를 비밀리에 추진했다.

3. 소프트웨어 독점의 씨앗 ― MS-DOS 생태계와 해적판, 그리고 BASIC 라이선스 모델

1982~1985년은 “MS-DOS + 8086/88” 호환기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시기다. 컴팩 Portable, 델 Turbo, HP Vectra 등 40여 제조사가 앞다퉈 PC를 내놨고 DOS용 개발툴—MASM·QuickBASIC·GW-BASIC—이 번들되면서 게임·유틸·업무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이 쏟아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언어-툴체인-OS-API-문서”를 패키지화해 ISV 6,000곳을 지원했다.

그러나 확산과 동시에 불법 복제도 급증했다. 대학생들은 플로피 한 장에 DOS, Lotus 1-2-3, dBASE, 게임 수십 개를 복사해 돌렸다. 1983년 MSDN 레터에서 빌은 다시 “소프트웨어는 창작물”이라 강조하며 카피당 로열티 정책을 업계 관행으로 못박았다. 동시에 디스크 키·시리얼 넘버·등록제 같은 카피 프로텍션과 패키지 소매판 업그레이드 모델을 도입해 추가 수익원을 확보했다.

MS-DOS 4.x 시기에는 XMS/EMS 메모리 한계, FAT 클러스터 낭비로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고, GUI 셸 Windows(1.0 → 2.0 → 3.0)가 DOS 위에 올라탔다. 그러나 DOS 커맨드 API는 1995년 Windows 95가 32비트 부트로더로 대체될 때까지 세계 PC 90 %에 설치된 ‘공용 소프트웨어 인프라’였다.

빌 게이츠의 초기 철학—“코드는 자산, 인터페이스를 선점하라”—는 DOS에서 윈도우, 오피스, IE, .NET 생태계까지 일관되게 흐르며 훗날 1998년 반독점 소송의 단초를 제공한다.

 

레이크사이드의 장난감 컴퓨터 앞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알테어 BASIC을 거쳐 MS-DOS 독점으로 진화했다. “코드 소유권·라이선스 모델·플랫폼 선점”이라는 세 가지 원칙은 PC 표준을 뒤흔들었고, 전 세계 책상 위를 ‘MS 세계’로 물들였다. 2부에서는 DOS 위에 꽃핀 윈도우 3.0·95·IE 번들 전략 그리고 법정으로 번진 반독점 파장을 따라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