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 XP는 ‘안정성·보안·디지털 허브’라는 표어로 2000년대 내내 PC 생태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슬래머·블래스터 웜, 반독점 규제, 아이폰·안드로이드 등장으로 ‘윈텔 표준’만으로는 생존이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닷넷·애저·엑스박스·서피스·윈도우폰은 거대한 조직이 속도전을 따라잡기 위해 꺼내 든 반격 카드였다. 3부는 XP 황금기, 모바일 좌절, 그리고 사티아 나델라 체제 직전까지 MS가 겪은 고비와 돌파구를 추적한다.
1. “완벽에 가까운 OS” ― 윈도우 XP가 만든 10년 천하
2001년 10월 25일, 캘리포니아 소노마의 초록 언덕을 담은 배경화면 ‘Bliss’와 함께 윈도우 XP가 출시되었다. XP는 가정용 9x 커널과 기업용 NT 커널을 통합한 최초의 운영 체제였다. 32비트 보호모드, NTFS, 시스템 복원, 자동 업데이트, 내장 방화벽, DirectX 9 등은 이전 버전에서 흔히 보던 파란 화면과 드라이버 충돌 공포를 크게 줄였다. “컴퓨터는 불안정하다”는 대중 인식을 뒤집은 것이다.
무엇보다 XP는 디지털 카메라와 MP3 플레이어가 급속히 대중화되던 시점에 Windows Picture and Fax Viewer, Movie Maker, Media Player 8을 기본 탑재해 “사진·음악·동영상이 한곳에서 돌아가는 디지털 허브” 비전을 선보였다. USB 2.0과 Wi-Fi 802.11b 드라이버를 내장해 ‘꽂으면 인식’이라는 플러그앤플레이 경험을 완성했고, 홈 네트워킹 마법사는 공유 폴더와 프린터 연결 절차를 혁신적으로 단순화했다.
개발자 영역에서도 변화가 컸다. Win32 API 위에 GDI+ 벡터 그래픽, 쉘 확장, COM+ 1.5가 얹혔고, 2002년에는 .NET Framework 1.0이 CLR·C#·WinForms·ADO.NET을 표준 스택으로 선언했다. 덕분에 써드파티 개발자들은 리소스 핸들, GDI 64 KB 한계, 복잡한 COM 등록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비스 팩 2(2004)는 ‘Trustworthy Computing’ 선언의 결정체였다. Windows Firewall을 기본 활성화하고, DEP·ASLR·IE 팝업 차단·ActiveX 킬비트를 도입했으며, “알림 영역 빨간방패” 보안센터로 업데이트·백신·방화벽 상태를 종합 점검할 수 있게 했다. 이 시점 XP 점유율은 데스크톱의 76 %에 달했다. 기업은 도메인·그룹 정책·RDP 5.1 덕분에 XP Professional을 10년 넘게 유지했고, 관공서·은행·공장 제어실까지 ‘XP+IE6+ActiveX’ 조합이 사실상의 국가 인프라가 되었다.
그러나 장기 집권은 레거시 덫이었다. 하드웨어 업체들은 XP 전용 드라이버와 레지스트리 꼼수 기능을 남발했고, 보안 패치가 끊긴 후로도 수천만 대 ‘좀비 PC’가 남았다. MS가 변화를 서두르지 않으면 웹·모바일 혁명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렸다.
2. 플랫폼 전환의 몸부림 ― 닷넷·애저·클라우드, 그리고 엑스박스 라이브
XP 탄생과 동시에 진행된 프로젝트가 바로 .NET이다. 1990년대 말 자바가 “한 번 작성, 어디서나 실행”을 내걸고 서버·모바일까지 장악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XML 웹서비스’와 C#을 무기로 반격했다. 2002년 공개된 .NET Framework 1.0은 공용 CLR, WinForms, ADO.NET, ASP.NET, 그리고 비주얼스튜디오 .NET이라는 통합 IDE를 제공했다. 개발자는 어셈블리 등록·COM IDL 작성 없이 안전한 관리 코드와 GC 덕분에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초기 .NET은 설치 파일만 20배가 넘는 22 MB였고, GAC 공유 어셈블리 버전 충돌과 WinForms/GDI 이슈로 곤혹을 치렀다. 자바陣이 ‘LAMP → 스크립트’로 전열을 가다듬는 동안 MS는 2006년 .NET 3.0(WPF·WCF·WF·LINQ)로 선언적 XAML UI·서비스 통신·ORM 개념을 선보였고, 2012년에는 코드 전면 오픈소스화, 2014년 .NET Core로 크로스 플랫폼 전환을 공식화했다.
서버 쪽에선 가상화 붐이 불었다. VMware ESX가 하이퍼바이저 시장을 선점하자 MS는 Windows Server 2008에 Hyper-V를 묶었지만 성능·관리 도구에서 열세였다. 위기감은 2010년 Windows Azure(현 Azure) 탄생으로 이어졌다. 첫 버전은 .NET 전용 PaaS와 SQL Azure, Blob Storage만 제공해 ‘닫힌 구름’이라 불렸으나, 2012년 IaaS VM·리눅스·오픈소스 SDK를 지원하며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전략으로 급선회했다. SQL Database·Service Bus·Cosmos DB·AKS·Functions로 스펙트럼을 넓혀 2023년 기준 점유율 22 %로 AWS에 이어 2위에 올라섰다.
한편 리빙룸 주도권을 노린 **엑스박스** 프로젝트가 2001년 시작됐다. x86 CPU·DirectX GPU·하드디스크를 품은 콘솔은 소니·닌텐도와 달리 PC 아키텍처를 콘솔로 옮겼다는 점에서 파격이었다. 1세대는 하드웨어 고가·독점 IP 부재로 적자를 봤지만, 2002년 Xbox Live가 브로드밴드 전용 온라인 서비스를 개시하며 판을 바꿨다. 음성 채팅·매치메이킹·클랜 시스템은 콘솔 온라인 멀티의 표준이 됐고, 번지 스튜디오의 《헤일로 2》는 첫날 250 만 장을 팔아치우며 MS IP 파워를 증명했다. 2005년 **Xbox 360**은 멀티코어 PowerPC CPU와 512 MB GDDR3, 마켓플레이스 DLC, 성취 시스템, 1080p HDMI 지원으로 PS3와 대등한 2강 구도를 형성했다. 2010년 키넥트 모션 카메라가 출시돼 ‘컨트롤러 없는 체감 게임’ 열풍을 일으켰고, Live Gold 구독료가 연 10억 달러 현금 흐름을 창출했다.
닷넷과 엑스박스는 “PC·클라우드·거실을 한 플랫폼으로 묶겠다”는 MS의 확장 전략이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라는 새 플랫폼이 예고 없이 등장하며 레거시 중심 조직에 거센 충격을 안겼다.
3. 모바일 대전 패배 ― 윈도우 비스타·폰 7·8, 서피스 RT와 나델라 체제 전환
2006년 출시된 윈도우 비스타는 에어로 글래스·UAC·ReadyBoost·검색 인덱서 등 화려한 기능을 내세웠지만, 고사양 요구·드라이버 부재·UAC 경고 남발로 “메모리 먹는 투명창”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OEM·기업들은 XP 다운그레이드 옵션을 요구했고, 저가 넷북에는 리눅스·안드로이드 실험이 번지기 시작했다. MS는 2009년 윈도우 7으로 평판을 회복했지만, 그사이 애플은 아이폰·앱스토어로 모바일 생태계를 석권했다.
MS의 대응은 Windows Mobile 6.x를 터치 UI 없이 그대로 유지하다 2010년 Windows Phone 7으로 급선회하는 식이었다. 메트로(후 플루언트) 타일 UI는 참신했으나 XNA·Silverlight 이원화, 복·붙 미지원, IE9 렌더링 제한, 앱 생태계 구축 지연으로 시장 반응은 미지근했다. 2012년 Windows Phone 8이 NT 커널을 탑재하고 C++ 네이티브·DirectX 게임을 지원했지만, iOS·안드로이드가 이미 점유율 90 %를 나눈 뒤였다. 라미 니엘슨, 루미아 920 같은 평작도 있었으나 개발자와 소비자는 두 OS만으로 충분했다.
태블릿 반격 카드 서피스 RT(2012)는 ARM 기반 윈도우 RT가 데스크톱 x86 앱을 돌리지 못한다는 혼선과 앱 스토어 빈약으로 9억 달러 재고 손실을 기록했다. MS는 결국 ‘디바이스&서비스 회사’ 선언 아래 노키아 스마트폰 사업부를 72억 달러에 인수(2014)했지만, 윈도우폰 점유율은 3 %에 그쳤고 2016년 76억 달러 감액 손실과 함께 사업은 사실상 종료됐다.
이사회와 투자자는 “레거시 방어에 몰두한 비스타·폰 전략이 기회비용을 키웠다”고 지적했고, 2014년 **사티아 나델라**가 세 번째 CEO로 선임된다. 나델라는 부임 직후 대규모 구조조정(노키아 디바이스 인력 1만 8천 명 감축)과 함께 “모바일-퍼스트, 클라우드-퍼스트” 재편을 선언했다. 오피스 iOS·안드로이드 무료 공개, .NET 코어 오픈소스화, 깃허브·링크드인·게임스택 인수, 애저·엑스박스·M365 구독 중심 수익 모델 전환은 MS를 다시 ‘가장 가치 있는 SaaS·클라우드 기업’으로 끌어올렸다. 모바일 하드웨어 승부는 접었지만, 애저+AI+게임패스 연결 고리는 MS를 2020년대의 플랫폼 재경쟁 무대 한복판에 세웠다.
XP 황금기는 마이크로소프트 역사상 가장 길고 달콤한 지배 체제였지만 동시에 변화를 늦춘 덫이기도 했다. 비스타 악몽·윈도우폰 참패·노키아 인수 실패 속에서도 닷넷·애저·엑스박스·서피스로 구조적 반격을 시도했고, 나델라 체제에서 ‘클라우드·AI·게임 구독’ 삼각 축으로 재기해 시가총액 2조 달러 클럽에 복귀했다. 4부에서는 애저 절대강자, 오픈AI 투자, 코파일럿 전략으로 이어지는 ‘사티아 시대’의 질주를 살펴본다.